
우리는 그들을 ‘빠순이’라 부른다
'빠순이'라는 말, 많이 들어보았을 것이다. 요즘에는 줄여서 '빠'라고 부르기도 한다. 네이버 오픈사전에도 등록되어 있다.

저 예문에서는 운동선수에 대한 '빠순이'를 예로 들고 있지만, 이 단어가 더 많이 쓰이는 곳은 아이돌 팬덤 세계일 것이다. 아무래도 동방신기 팬보다 동방신기 빠순이가 더 자연스럽다. (고백하건대 나에게는 빠순이였던 시절이 있었다. YG 엔터테인먼트의 힙합 그룹 1TYM을 좋아했다. 1TYM은 기획에 의해 생산되었고 거대 기획사 소속이라는 점 등 아이돌적 특징을 다수 가지고 있기에 여타 힙합 그룹들과 조금 다르다. 요즘의 빅뱅과 가장 비슷하다고 본다. 아무튼 그들을 너무나도 좋아해서 앨범 구매는 물론이요 팬싸인회, 콘서트, 음악 공개방송 등을 쫒아다니곤 했다. 그룹 로고가 적힌 수건이나 포스터, 형광 응원봉, 티셔츠 등도 모두 구매했다. 비디오 녹화도 빼놓지 않았다. 지금은 그 모든 것들이 자취를 감추었기에 자료를 보여줄 수 없는 것이 아쉽다. 1TYM에 대한 애정은 5집 활동 때부터 식기 시작해 지금은 놀랍게도 아무 감정이 없다. 요는 내가 아이돌 팬덤이라는 집단의 경험자였고, 그 특수한 소비 형태에 대해 잘 알고 있다는 것이다.)이 '빠순이들', 즉 아이돌 팬덤의 특징은 오픈사전의 추가된 내용에도 나와있듯이 '인기의 고하를 막론하고, 한 연예인이나 인기인 등을 지속적으로 따라다니며 서포트를 해주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아이돌 팬덤은 주로 10대에서 20대 초반이며 대부분 여성들이다. 팬덤에 여자가 많은 이유는 저번 보이그룹 포스팅에서 말했듯이 여성 소비자가 남성 소비자보다 '애인으로서의 아이돌'의 환상을 더 강하게 추구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들은 자신들이 좋아하는 아이돌에 대해 무조건적 사랑을 베푼다. 아이돌의 성패 여부는 팬덤의 형성 유무와 직결된다고 할 수 있는데 그 무조건적 사랑이라는 것이 소비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팬덤은 기획사의 의도대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예전에 비해 아이돌 팬덤이 형성되는 과정은 많이 달라졌다. 아이돌은 기획사의 철저한 기획 하에 생산되지만, 팬덤은 기획사가 만든다고 해서 만들어지지 않는다. 팬덤의 형성은 소비자들로부터 자연스럽게 형성된다. 예전에는 공식 팬클럽을 모집해 그들에게 아이돌에 대한 이벤트를 제공하는 형식으로 팬덤 형성이 이루어졌다면, 인터넷이 발달한 요즘에는 팬덤 형성에 있어서 소비자가 주체가 된다. 어떤 아이돌 그룹이 데뷔 후 인기를 모으게 되면 그에 따른 인터넷 커뮤니티가 생성되고, 여기서 활동을 함께하는 무리가 팬덤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예전보다 더 광범위한 형태로 팬덤이 이루어지며, 인터넷 커뮤니티 별로 다양한 성격을 지닌 팬덤이 존재할 수 있게 되었다. 팬덤은 다양해졌지만 자신이 택한 아이돌에게 충실한 소비자가 된다는 기본 원리는 변하지 않는다. 그 기본 원리에 의해 한 자리에 모이고 형성된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일단 팬덤이 형성되면 그 팬덤의 수 만큼의 소비자는 확보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들은 말 그대로 '인기의 고하를 막론하고' 또는 아이돌 그룹의 음악적 퀄리티에는 신경쓰지 않고 '지속적인 서포트를' 해준다. 판매자 입장에선 얼마나 매력적인 소비자겠는가.
소비자인 동시에 생산자가 된다
팬덤이 다른 소비자들과 차별화되는 가장 큰 이유가 바로 그 충성도이며, 두 번째는 2차 재생산이 매우 활발하게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기획사에 의해 생산되는 음악이나 여타 방송이 1차 생산이라면, 팬들은 그 1차적 자료를 바탕으로 2차 생산을 만들어간다. 아이돌을 주인공으로 한 소설인 팬픽(Fan+fiction), 팬아트, 팬코스프레(팬 코스튬플레이) 등 다양하다. 인터넷이 발달하면서 팬덤의 2차 생산물 제작은 인터넷 커뮤니티를 통해 더 다양하고 넓게 진행되고 있다.

샤이니 팬아트와 중국의 소녀시대 팬코스프레 사진이라고 한다. 이와 같이 팬들은 아이돌 산업에서 수동적인 소비자로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닌, 새로운 생산자의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다. 특히 팬픽과 팬아트 등의 2차 창작물은 다양하게 발전되어 있으며 팬덤 사이에서 거래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팬픽의 유명 작가들에 대해서는 그에 따르는 팬들이 형성되기도 한다. 팬에게 팬이 생기고 소비자에게서 소비자가 생기는 기현상이다. 한 가지 주목할 만한 특징은 팬픽의 주된 내용이 아이돌 멤버간의 사랑으로 이루어진다는 점이다. 그 이유는 아마도 자신이 좋아하는 멤버가 여자 연예인과의 현실 연애를 하는 것은 환상을 깨기 때문에 가슴아프지만, 그 그룹 내의 다른 멤버와 좋아한다면 둘 모두 자신이 좋아하는 아이돌이기 때문에 만족스럽기 때문일 것이다.
제대로 나아가고 있는가?
이렇게 팬덤은 다른 소비자와 다르게 훨씬 적극적인 소비자의 면모를 보여주며, 자신들만의 세계를 개척해나간다. 그렇다면 과연 그것은 주체적인 소비 문화로 나아가고 있을까? 안타깝게도 그렇지 못한 면이 많다. 가장 먼저, 그들은 제일 대우받아야 할 소비자임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된 소비자 대접을 못 받고 있다.극단적인 예로, 올해 초 문제가 되었었던 씨엔블루의 매니저 폭행 사건을 보자. 차량에서 내리는 씨엔블루 멤버들에게 팬들이 몰려들자 매니저가 그 중 한 명을 비인간적으로 폭행하는 영상이다. 이와 같이 팬들은 자신이 가장 큰 소비자임에도 불구하고 그에 상응하는 대우를 받기는커녕 10대라는 이유로 무시당하고 험한 대접을 받기 일쑤다. 그럼에도 그들은 자신들이 좋아하는 아이돌을 보기 위해 그 굴욕을 견디며 따라다닌다. 이 ‘따라다니는 것’의 최종적 형태가 바로 사생팬이라고 할 수 있다. 사생팬은 사생활과 팬의 합성어로, 아이돌 멤버의 일거수 일투족을 따라다니며 그들의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스토커적 형태의 팬을 일컫는 말이다. 이들은 아이돌을 따라다니면서 보고 즐기는 것을 뛰어넘어 그들과 개인적으로 알고 지내는 사이가 되고자 하는 욕망에 의해 움직인다.
기획사와 팬덤, 상생하는 관계를 위해
왜 이렇게 팬들은 자신이 주는 애정에 상응하지 못하는 대접을 받으면서도 자진해서 팬이 되는가? 책임은 기획사에게도, 팬들에게도 있다. 거대 기획사는 가장 강력한 소비자 집단은 팬덤에게 귀를 기울여야 한다. 현재로써는 팬덤과 기획사 사이에 이렇다할 피드백이 일어나지 않고 있다. 새 멤버를 영입하거나 기존 멤버를 탈퇴시키는 일과 같은 팬들 입장에서 가장 민감한 문제에서도 기획사는 일절 다른 의견을 수용하지 않고 독단적으로 일을 처리한다. 이에 반대하는 팬들의 시위나 보이콧 등이 이어졌지만 이렇다 할 효과를 보여주진 못했다. 오히려 재범 탈퇴 후 팬들과의 소통을 시도해보고자 했던 2PM의 간담회는 준비성 미흡과 팬들을 기만하는 발언 등으로 인해 역효과만 불러일으켰다. 팬덤의 문제도 있다. 기획사의 독단적 행태에 대해 반대하다가도 시간이 지나면 다시 기획사의 전략에 순응하고 소비하는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초창기 12명의 멤버로 시작했던 슈퍼주니어가 규현이라는 새 멤버를 팬들의 동의 없이 영입했을 때 팬들은 시위로 대응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고 13명의 슈퍼주니어가 활동하게 되면서 팬들은 자연스럽게 그 체제를 받아들이고 다시금 충성스런 소비자로서의 역할로 돌아가게 되었다. 팬덤이 이렇게 주체적이지 못한 모습, ‘어떻게 해도 결국은 소비해주는’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에 기획사가 그들을 기만하게 되는 것이다.
기획사와 팬덤 간의 바람직한 생산자-소비자 관계가 되려면 양자 모두 노력해 합리적인 방향의 생산과 소비문화를 이루어야 한다. 팬덤은 더 주체적인 소비자가 되어야 한다. 자신들이 불합리한 대우를 받거나 기획사가 자신들을 무시한다고 느껴질 때 단호한 거부와 입장 표명을 보여주어야 한다. 또한 도에 넘치는 불법적 팬 행위(사생팬)에 대해 지양하는 분위기를 형성해나가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기획사는 소통의 창구를 마련하는 것이 시급하다. 어떻게 하면 더 잘 팔릴까만을 생각하는 게 아니라 팬을 우선시하는 전략을 세워보는 건 어떨는지. 팬덤의 피드백에 의해 더 나은 전략으로 아이돌을 생산한다면 그에 따른 더 큰 소비가 창출될 수 있을 것이다. 성숙한 팬덤 문화가 대한민국 아이돌 산업에 정착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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